백제 기술의 정수와 현대 복원의 모범
전라북도 익산시에 위치한 미륵사는 백제 무왕(재위 600~641)이 창건한 거대한 불교 사찰로, 지금은 국립미륵사지유물전시관과 함께 백제의 역사와 미술, 건축기술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유적지로 자리 잡고 있다.
특히 이 사찰의 서쪽에 위치한 미륵사지 석탑은 한국 석탑 건축의 시원(始原)을 보여주는 상징적 유산으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석탑이자, 백제 건축기술의 정수를 담고 있는 중요한 문화재이다.
이 글에서는 미륵사지 석탑의 역사, 구조적 특징, 발굴 및 해체 복원 과정, 유물 출토 현황, 그리고 문화재적 가치 등을 체계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미륵사지와 석탑의 역사적 배경
1. 백제 무왕과 미륵사의 창건
『삼국유사』에 따르면, 백제의 무왕은 왕비(선화공주)와 함께 미륵사를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이는 단순한 신앙적 목적을 넘어 당시 백제의 국력을 과시하고 불교를 통한 국가 통합을 꾀한 정치적 배경이 있었던 것으로 평가된다.
미륵사는 백제 최대의 사찰로 추정되며, 좌·중·우 삼탑 삼금당(三塔三金堂)의 구조를 갖춘 동아시아 유일의 형식을 채택했다.
2.2 석탑의 건립 시기
미륵사지 석탑은 사찰 서쪽 금당 앞에 세워진 석탑으로, 건립 시기는 사찰 창건과 같은 7세기 초(약 639년경)로 추정된다. 석탑은 백제 시대에는 주로 목탑이 주류였던 시대에 드물게 석재로 건축된 탑으로, 그 희귀성과 독창성으로 인해 더욱 주목받고 있다.
석탑의 구조와 건축적 특징
3.1 전형적인 백제 양식과 이례성
미륵사지 석탑은 동아시아 불교사에서 보기 드문 석재로 구성된 목탑 형식을 따르고 있다. 이른바 ‘가람배치 속 목탑을 모방한 석탑’이라는 개념은 이 석탑의 독자성을 설명해주는 주요 개념이다.
3.2 크기와 구성
- 높이: 복원 전 약 14.5m / 복원 후 약 14.8m
- 평면 구성: 정사각형 평면, 1층 기단 위에 6층 탑신
- 형태: 각 층은 점차 줄어드는 비례감을 유지하며, 돌을 짜 맞춘 방식으로 구성
기단과 탑신 모두 장대석(긴 직사각형 석재)을 이용하여 안정감 있는 구조를 형성하고 있으며, 내부에는 중심기둥이 없는 독특한 형태를 보인다. 탑 내부에는 불상과 함께 사리 장치도 함께 봉안되어 있었다.
3.3 건축 기술의 특징
- 조립식 석조 구조: 석재를 목조건축에서처럼 기둥, 보, 지붕 등을 형상화하여 결구한 독특한 양식
- 내부 공간 활용: 사리봉안 시설이 층별로 마련되어 있었으며, 내부 출입이 가능한 구조로 되어 있다
- 석재의 내구성과 보존성: 백제 특유의 정교한 석재 가공 기술이 드러난다
4. 붕괴와 복원: 문화재 수리의 전범
4.1 붕괴의 역사
미륵사지 석탑은 오랜 세월을 거치며 붕괴와 훼손을 반복하였다. 조선 후기로 들어서며 탑의 동쪽 절반은 무너졌고,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인들에 의해 콘크리트로 임시 보강된 상태로 남게 된다.
4.2 해체 수리 결정
1990년대 후반, 석탑의 구조적 불안정이 심각해지면서 해체 복원이 결정되었다. 해체 작업은 2001년에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2010년대 초까지 약 20년에 걸쳐 진행되었다.
- 해체 작업 시작: 2001년
- 복원 완료: 2019년
- 총 해체 및 복원 석재 수: 약 1,627개
- 복원비용: 약 240억 원 이상
복원은 단순한 형태 복원이 아니라, 원형 보존을 최우선 원칙으로 하여 과학적·고고학적 조사 결과에 따라 엄격하게 시행되었다.
5. 유물 출토와 고고학적 성과
5.1 금제사리봉안기 출토
2009년, 1층 심주석 중앙에서 백제 금제 사리봉안기가 출토되어 학계를 크게 놀라게 했다. 이는 백제 왕실이 미륵사 석탑을 직접 조성했음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증거로, 사리봉안기의 내용에 따르면 “무왕이 639년에 왕비를 위해 탑을 세웠다”고 기록되어 있다.
5.2 출토 유물
- 금동불상 파편
- 사리병과 사리 장치
- 장신구, 도자기 조각, 동제 공양구 등
이 유물들은 모두 국립익산박물관에 소장 및 전시 중이며, 백제 후기의 불교 신앙과 장례·공양 의식, 탑의 건축 목적 등을 고고학적으로 설명하는 데 큰 기여를 하고 있다.
6. 문화재로서의 가치
6.1 국보 제11호
미륵사지 석탑은 1962년 대한민국 정부에 의해 국보 제11호로 지정되었다. 이후 해체 및 복원 과정을 거치며 그 문화재적 가치는 더욱 높아졌으며, 백제 미륵사의 중심 건축물로서 백제 왕권과 불교의 관계를 증명하는 자료로 평가된다.
6.2 세계유산 등재
미륵사지 유적은 201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백제역사유적지구’ 중 하나로 등재되었다. 그 핵심 근거 중 하나가 미륵사지 석탑이었다. 유네스코는 이 유적이 고대 동아시아의 불교 전파와 정치문화 교류를 보여주는 상징이라 평가했다.
6.3 복원의 모범사례
미륵사지 석탑은 과거에는 콘크리트로 덧댄 보수 흔적으로 많은 비판을 받았지만, 이번 해체·복원 작업은 국내외 문화재 보수 및 복원 방식의 전환점이자 모범사례로 인식되고 있다. 석탑 복원은 구조공학, 고고학, 미술사학, 건축학 등이 통합된 학제간 협업의 성과물이다.
7. 관람 정보 및 부가 콘텐츠
7.1 국립익산박물관
2019년 개관한 국립익산박물관에서는 미륵사지 석탑 출토 유물을 상설 전시하고 있으며, 석탑의 구조를 설명하는 디지털 콘텐츠도 함께 제공한다.
- 위치: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미륵사지로 362
- 관람료: 무료
- 주요 전시: 백제 금제사리봉안기, 탑 내부 구조 디오라마, 3D 복원 영상
7.2 미륵사지 유적지
석탑 외에도 미륵사지에는 동·중·서 금당터, 강당, 승방, 연못 등 다양한 유적이 남아 있어, 당시 사찰의 위용을 실감할 수 있다. 현장에는 복원된 석탑 외에 동탑터도 함께 보존되고 있으며, 발굴된 유적은 보호각과 해설판으로 상세히 안내되고 있다.
익산 미륵사지 석탑은 단순한 돌탑이 아니다. 그것은 백제 왕실의 국가경영 전략, 불교에 대한 신앙, 당시의 건축 및 조형 기술, 그리고 현대 문화재 복원 기술의 총합을 모두 아우르는 복합문화유산이다.
무너진 반쪽 탑을 해체하고 다시 복원하는 20년의 여정은 우리에게 단순히 과거를 복원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위해 과거를 어떻게 ‘보존’하고 ‘해석’할 것인가에 대한 중요한 물음을 던진다.
참고자료
- 『삼국유사』, 일연
- 국립문화재연구소, 미륵사지 석탑 해체복원 보고서
- 국립익산박물관 공식 웹사이트 https://iksan.museum.go.kr
- 문화재청 미륵사지 석탑 소개 페이지 https://www.cha.go.kr
-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 https://whc.unesco.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