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국력을 상징한 위대한 탑: 황룡사 9층 목탑
1. 황룡사지 9층 목탑이란?
황룡사 9층 목탑은 통일신라 이전인 7세기 중반, 선덕여왕(재위 632~647) 시기에 경주 황룡사 경내에 세워진 목조 건축 양식의 초고층 불탑이다. 이 목탑은 당시 동아시아 최대 규모로 알려졌으며, 신라의 국력을 상징하는 대표 건축물이었다.
현재는 건물 자체가 소실되어 터(址)만 남아 있으나, 고고학적 조사와 사서 기록을 통해 그 구조와 규모가 비교적 정확히 밝혀져 있다.
2. 건립 배경
2.1 삼국의 긴장 속 신라의 선택
7세기 전반은 고구려·백제·신라 삼국이 치열하게 대립하던 시기로, 외교적 안정을 위한 상징적 조치가 절실한 시기였다. 특히 신라는 고구려와 백제의 공격에 시달리고 있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정신적·종교적 구심점을 필요로 했다.
이에 따라 신라는 불교의 힘을 빌려 국운을 강화하고자 했고, 황룡사 자체의 확장과 9층 목탑의 건립은 이러한 국가 정책의 일환이었다.
2.2 자장의 건의
황룡사 9층 목탑 건립의 핵심 계기는 고승 자장(慈藏)의 건의였다. 자장은 당나라에서 귀국한 후 불교의 힘으로 삼국을 통합하고자 하는 염원을 선덕여왕에게 전달했으며, 선덕여왕은 이를 수용하여 645년경 건립을 추진했다.
3. 구조와 규모
3.1 탑의 규모
- 총 높이: 약 80m(서양식 27층 아파트 높이에 해당)
- 기단부 너비: 약 23.7m
- 전체 구조: 9층의 목조건축물, 기와지붕 구조
목탑은 정사각형 평면을 기본으로 삼고, 중앙 기둥을 중심으로 좌우 대칭 형태로 구성되어 있었다. 건축 당시 기술력으로는 경이로운 구조였으며, 이를 가능케 한 신라의 건축 기술은 매우 발전된 수준이었음을 보여준다.
3.2 구조적 특징
- 기둥 수: 총 64개의 초석 발견
- 기단 형식: 판축 기단 위 석재 초석 배치
- 건축 재료: 목재, 기와, 금동장식 등
- 지붕 형식: 겹처마에 다포식 구조로 추정
이러한 구조는 목조건축물의 수직 안정성을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강풍과 지진에도 버틸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는 점에서 고도의 기술이 반영된 것으로 평가된다.
4. 상징성과 역할
4.1 삼국 통일의 염원
황룡사 9층 목탑은 9층이라는 층수에 주목해야 한다. 당시 신라, 고구려, 백제 외에 중국의 수·당, 유목민족 등 동아시아 주요 세력을 상징하는 숫자가 9였으며, 탑의 9층은 그 모든 국가들을 제도(濟度)하고, 불법(佛法)으로 다스리겠다는 포부를 담고 있었다.
4.2 불교적 의의
탑은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사리탑으로서의 기능도 가지고 있었으며, 국가 수호를 위한 불력(佛力)의 중심이었다. 선덕여왕은 정치적·종교적 리더십을 불교를 통해 구현하고자 했고, 9층 목탑은 그 핵심 상징이었다.
5. 황룡사의 소실과 발굴
5.1 원형의 파괴
황룡사와 9층 목탑은 1238년(고려 고종 25년), 몽골의 침입으로 인해 전소되었다. 당시 원정군은 경주 일대를 초토화시켰으며, 불에 탄 황룡사는 복원되지 못한 채 폐허가 되었다.
이후 조선시대에는 이 터가 경작지로 사용되었고, 일제강점기 때조차도 적극적인 복원이나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
5.2 현대의 고고학 발굴
- 1976~1983년 국립문화재연구소 발굴조사
- 2001년 황룡사 복원 종합정비계획 수립
- 현재 황룡사지에는 건물지와 초석, 기단 일부만 남아 있음
발굴 결과, 목탑의 정확한 위치, 기단 구조, 석재 배치, 배수시설 등이 드러났고, 이를 통해 건축 당시의 구조와 규모가 상당 부분 복원 가능해졌다.
6. 황룡사 목탑의 복원 논의
6.1 찬반 논의
복원에 대한 논의는 2000년대 들어 본격화되었으나, 현실적인 어려움도 존재한다.
찬성 입장
- 국가 상징물로서 복원의 가치가 높다
- 경주 지역의 역사 관광 자산 확대
- 전통 건축 기술 복원의 기회
반대 입장
- 사료와 유물이 부족하여 정확한 원형 복원이 어려움
- 막대한 예산 소요
- 현대 재료와 기술로 복원 시 역사적 진정성 훼손 우려
6.2 문화재청 및 경주시의 입장
문화재청은 현 상태 보존 및 디지털 복원, AR/VR 기반의 가상 체험 확대, 건축 기술 복원 연구 병행을 통한 간접적인 복원 방식을 선호하고 있으며, 경주시도 점진적 접근을 선호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7. 황룡사 9층 목탑의 문화사적 의의
- 아시아 최고 목탑이라는 기록적 위상
- 불교 국가 신라의 정신적 구심점
- 고대 동아시아 건축사에서 손꼽히는 목조건축 유산
- 국가 정체성과 국력 과시의 상징
단순한 종교 건축물이 아닌 정치, 외교, 종교, 과학, 예술이 집약된 복합 상징물로서 황룡사 9층 목탑은 고대 신라 문명의 정점을 보여준다.
황룡사 9층 목탑은 물리적으로는 사라졌지만, 정신적으로는 여전히 살아 있는 문화유산이다. 탑을 통해 우리는 신라가 추구한 세계관과 국가의 이상, 기술적 우수성, 그리고 불교에 대한 신념을 엿볼 수 있다.
오늘날 디지털 기술과 학술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황룡사 9층 목탑은 더 이상 잊힌 유물이 아니라, 다시 바라봐야 할 한국 건축·역사문화의 정수로 재조명되고 있다.
참고자료
- 『삼국유사』, 『삼국사기』, 『고려사』
- 문화재청 황룡사지 안내서 및 발굴조사 보고서
- 국립문화재연구소 황룡사지 발굴자료
- 경주시 황룡사 디지털 복원 자료
- 김원룡, 『한국고고학개설』
-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