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날을 만든 사람, 방정환의 생애와 업적
대한민국의 어린이라면 누구나 매년 5월 5일 ‘어린이날’을 손꼽아 기다립니다. 하지만 이 날이 단순한 휴일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어린이날’은 단지 놀고 쉬는 날이 아니라, 어린이의 인격과 권리를 존중하자는 사회적 운동에서 출발했습니다. 이 운동의 중심에는 바로 방정환(方定煥, 1899~1931) 선생이 있었습니다. 짧지만 굵은 생을 살며 우리나라 어린이 운동의 선구자로 불리는 방정환 선생의 생애와 업적을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1. 방정환의 생애 개요
1-1. 유년기와 교육 배경
방정환은 1899년 11월 9일, 서울시 중구 초동에서 태어났습니다. 가세가 그리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아버지 방경수는 한학을 가르치는 선비로서 자식 교육에 열정적이었습니다. 방정환은 한문 교육을 바탕으로 성장했으며, 개화기 신교육의 흐름에 따라 보성고등보통학교(현 보성고등학교)를 다녔습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글쓰기와 책 읽기에 큰 흥미를 보였으며, 청년 시절에는 ‘문학소년’으로 불릴 정도로 문장력이 뛰어났습니다. 특히 아동문학과 교육에 남다른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일본 유학 중에 접한 사회운동과 국제 아동복지 운동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1-2. 일본 유학과 사상적 전환
1920년대 초반, 방정환은 일본 도쿄에서 유학하며 사회주의 사상과 아동 중심 교육에 관한 다양한 이론을 접했습니다. 일본의 진보적 사상가들이 펼치는 어린이 중심 교육론과 동화문학 운동은 방정환에게 큰 자극이 되었고, 이를 조선에 도입하려는 의지를 다지게 했습니다.
이 시기 그는 일본의 아동문학 운동 단체인 '아카이토리(赤い鳥)'의 영향을 받아, 한국 아동문학의 발전을 꿈꾸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어린이도 한 사람의 인격체’라는 사상을 바탕으로 글을 쓰고, 조직을 만들고,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2. 아동운동의 시작과 전개
2-1. '어린이'라는 말의 탄생
방정환의 가장 상징적인 업적 중 하나는 바로 '어린이'라는 단어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그 이전까지 조선 사회에서는 ‘아해’, ‘애들’, ‘애기’ 등 어린이를 낮춰 부르는 표현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는 “아이들도 인격을 가진 한 사람”이라는 신념을 담아 존칭형 단어인 ‘어린이’를 만들어 사용했습니다. 이는 당시로서는 매우 혁신적인 언어 혁명이었고, 이후 전 국민적 언어로 자리 잡았습니다.
2-2. 색동회와 어린이 운동의 시작
1923년, 방정환은 ‘색동회’를 결성하였습니다. 색동회는 어린이를 위한 문화운동, 계몽운동, 권리운동을 종합적으로 전개하는 단체였습니다. 같은 해 5월 1일, 경성 종로에서 제1회 어린이날 기념행사를 개최하며 국내 최초의 어린이날을 선포했습니다. 이 날은 어린이의 인격을 존중하고, 더 나은 교육과 복지를 촉구하는 날로 자리매김했습니다.
그는 색동회를 통해 아동문학 창작, 동화집 발간, 동요 보급, 어린이잡지 발간 등을 주도했으며, ‘어린이’ 잡지는 그 중심에 있었습니다. ‘어린이’는 당시 조선의 어린이들에게 지식과 감성을 심어준 매체로, 어린이 중심의 시각에서 문학과 교양을 제공했습니다.
3. 문필 활동과 아동문학의 선구자
3-1. 동화와 수필, 번역의 영역
방정환은 직접 동화와 수필을 다수 집필했으며, 외국의 우수한 아동문학을 번역하여 소개했습니다. 그가 지은 대표적인 동화로는 〈만년샤쓰〉, 〈가자, 가자〉, 〈눈보라〉, 〈벙어리 삼 형제〉 등이 있으며, 문장력과 상상력이 풍부하고, 어린이의 감성을 존중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특히 〈만년샤쓰〉는 가난하지만 부모를 위해 헌신하는 아이의 이야기를 통해 당시 사회의 빈곤 문제와 부모-자식 간의 사랑을 섬세하게 다뤘습니다.
3-2. 번역가로서의 역할
그는 서양 문학, 일본 문학을 비롯한 다양한 아동문학 작품을 번역하여 어린이들에게 소개했습니다. 대표적으로 안데르센 동화, 톨스토이의 작품, 이솝 우화 등을 조선 어린이들의 눈높이에 맞게 번역한 것은 매우 선구적인 작업이었습니다.
이를 통해 방정환은 단순한 문필가를 넘어 문화 번역자이자 교육 운동가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했습니다.
4. 방정환의 사상과 철학
방정환의 아동관은 시대를 초월하는 현대적인 시각이었습니다. 그는 다음과 같은 철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 어린이는 나라의 보배다.
- 어린이에게도 사상과 감정이 있다.
- 어린이는 억압과 착취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 어린이에게 존대어를 사용해야 한다.
이러한 철학은 단순히 말에 그치지 않고, 실천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는 사회운동가로서 노동자, 빈민층 어린이들의 삶 개선에도 큰 관심을 가졌으며, 교육의 평등을 강하게 주장했습니다.
5. 방정환의 죽음과 유산
방정환은 1931년, 과로와 병으로 인해 33세의 나이로 짧은 생을 마감했습니다. 비록 생애는 짧았지만, 그의 사상과 실천은 한국 아동문화와 교육의 기초가 되었으며, 대한민국 어린이날의 창시자로 영원히 기억되고 있습니다.
그가 남긴 가장 큰 유산은 어린이를 존중하는 문화, 아동문학의 뿌리, 아동 인권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개선입니다.
6. 방정환을 기리는 활동
오늘날에도 방정환을 기리는 다양한 활동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 방정환기념사업회 운영
- 방정환문학상 제정
- 방정환기념관(서울 중구) 운영
- 각종 어린이날 기념행사에서의 추모와 계승 활동
그가 남긴 정신은 교육, 문학, 인권 전반에 걸쳐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오늘날의 어린이 권리 선언과 아동복지 정책의 초석이 되었습니다.
방정환 선생은 단지 ‘어린이날을 만든 사람’ 그 이상이었습니다. 그는 시대를 앞서간 교육자이자, 아동문학의 창시자이며, 인권운동가였습니다. 짧은 생을 살았지만, 그의 사상은 세대를 뛰어넘어 오늘날에도 깊은 울림을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매년 5월 5일을 기념할 때, 그 기념일의 참된 의미와 함께 방정환 선생이 꿈꾸었던 어린이가 행복한 세상을 함께 되새기고 실현해나가야 할 것입니다.